
월요일 아침, 사무실 형광등이 아직 완전히 달아오르지 않은 시간에, 주과장은 모니터 두 대를 나란히 켜놓고 한쪽 창에서는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다른 창에서는 인사 관리 시스템 대시보드를 확인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스크롤되는 숫자와 이름들, 그리고 적합·부적합을 가르는 칸 사이에서 그는 마치 오래된 피아노 코드를 찾듯 경력과 직무 키워드를 짚어내고 있었고, 그 과정은 HR 실무자라면 누구나 체득하게 되는 일종의 ‘직관적 패턴 인식’이었다 .
그러나 익숙한 리듬은 작은 알림음 하나에 깨졌다. “경력직 채용 — 글로벌 HR 로테이션, 업계 Top 5 보상”이라는 대기업 채용 공고가 새 탭으로 떠오른 순간,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제목부터 혜택까지 훑어 내려갔고, 스톡옵션·국내 최고 수준 복지·국외 파견 기회 같은 문장들이 어쩌면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 그의 감각을 자극했다 .
그 반짝임은 다니엘 카너먼이 말한 System 1, 즉 빠르고 자동화된 사고 체계가 보내는 초대장과도 같았다 . 브랜드 로고만 봐도 심박수가 살짝 올라가고, 예상 연봉 테이블을 내려보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릴 때, 그는 자신이 그동안 수없이 관찰해 온 지원자들의 첫 반응—“대기업이면 일단 클릭부터”—을 지금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 사실에 쓰게 미소 지었다 .
하지만 곧 System 2의 느린 기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연봉 30% 인상은 분명 매력적이다. 그러나 중견기업에서 이제 막 완성한 인사 평가 체계를 버리고, 완전히 다른 규정 속에서 다시 출발하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 내 업무 권한과 의사결정 속도는, 여전히 나답게 유지될 수 있을까?” 그는 지원서 양식의 이름 입력 칸에서 커서를 멈춘 채, 자신이 언제부터 ‘성장 기회’와 ‘문화 적합성’을 숫자로만 환산하고 있었는지를 되묻는다 .
점심시간, 구내식당으로 향하는 복도에서 후배 서대리를 만난다. “과장님, 이번 주엔 면접관 일정 조율이 빡빡하시죠?”라는 인사에 그는 무심코 “어, 그렇지”라고 대답했다가, 곧 어제 밤 집에서 써 내려간 자기소개서 초안을 떠올렸다. 거기엔 ‘이직률 12% 감소’ ‘조직문화 만족도 8점→9.1점’ 같은 지표가 빼곡했지만, 그런 숫자 이면의 땀과 설득과 시행착오, 그리고 ‘사람’이란 단어는 의외로 적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건드렸다 .
오후 커피를 들고 자리로 돌아오던 순간, 메신저 팝업이 깜빡였다. 박팀장의 짧은 메시지—“오늘 저녁 잠깐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 채, 대기업 채용 공고 창을 슬며시 닫았다. 그 찰나, 욕심과 불안이 화면 아래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퇴근 무렵, 회의실 불이 하나둘 꺼진 뒤에도 주과장은 자리에 남아 자기소개서 파일을 다시 열었다. 스크롤을 내릴수록 문장들에서 모난 부분이 보였다. ‘조직문화 혁신’이라는 굵은 표현 뒤에 “익명 설문 회수율 62% 달성”이라는 숫자를 붙여 놓고 스스로 만족했지만, 사실 그 설문이 직원들의 침묵을 진짜 해소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대기업 면접관들은 화려한 KPI보다 “우리 조직 안에서도 재현 가능한가?”를 묻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다 .
저녁 8시, 박팀장은 말없이 캔커피 두 개를 건넸다. “이직 고민한다는 얘기 들었다.” 주과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자리가 비면 당장 실무 공백이 크겠지만, 네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말리지 않겠다. 다만 그 회사가 너에게 ‘맞는 버스’인지 꼭 확인해라.” Jim Collins의 “Right people, right seats”라는 문장이 오버랩되며, 그는 자신이 버스 노선보다 먼저 좌석을 고르는 중임을 깨달았다 .
밤 11시, 집 책상 위, 노트북 화면은 흰색 폼 양식만 밝히고 있었다. 그는 마침내 지원서 이름 칸에 ‘Joo, Min-Hyuk’를 천천히 입력했다. 그리고 엔터키를 누르기 전, 채용 면접장에서 수없이 던졌던 질문을 이번엔 자신에게 던졌다.
“주과장님, 왜 우리 회사여야 합니까?”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이 잠시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대답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질문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질문이야말로 System 1이 던져준 설렘을 System 2가 지켜내는 첫 울타리라는 것을, 그는 오랜 HR 실무 끝에 비로소 자신에게 적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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