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8시 27분, 서울 강남의 한 빌딩에 있는 회의실. 신과장은 모닝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노트북 전원을 켰다. 전날 밤까지 손봤던 ‘결함 0건’ 품질 리포트를 다시 읽어 내려가다, 고팀장의 발걸음을 느껴 살짝 어깨를 폈다. 고팀장은 HR 전략실을 총괄하는 40대 중반의 베테랑, 가벼운 미소로 인사를 건네며 조용히 말했다. “신과장, 열심히 일하는 것과 성과를 내는 건 달라.”
짧은 한 문장이 파문처럼 퍼졌다. 신과장은 당황스레 웃었지만, 마음 한켠에서 ‘아침부터 생뚱맞은 조언’이라는 반발이 피어올랐다. 보고서 오류는 단 한 글자도 없는데 왜? 틈새 불안이 가슴 언저리를 톡톡 두드렸다.

1. 회의실의 침묵
9시 정각, 주간 업무 회의. 여러 그래프가 스크린을 채웠지만 토론은 평범했다. 신과장은 다이어리에 ‘리텐션 예측 모델 베타 테스트’라 적어두고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며칠 전 IT팀과 나눈 아이디어였지만, ‘경솔하다는 평가’를 피하고 싶었다. 팀장은 “다른 의견?”을 세 번이나 던졌으나 회의실은 정적만 길어졌다. 심리적 안전감¹이 부족한 팀은 아이디어 발생 빈도가 최대 35% 감소한다는 논문이 뇌리를 스쳤지만, 그는 다시 펜뚜껑을 닫았다.

2. KPI 리뷰에서 드러난 공백
점심 직후 KPI 리뷰. 신과장은 “데이터 품질 결함 0건 달성” 슬라이드를 자랑스럽게 넘겼다. 그러나 고팀장은 질문을 던졌다.
“오류 0건이 직원 리텐션 비율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스크린에 띄운 표엔 '결과 지표와 선행지표 매핑 미완료'라는 셀이 생경하게 빛났다. 파레토 법칙²에 따르면 핵심 활동 20%가 성과 80%를 만든다. 품질 0건 역시 ‘비용 절감’과 ‘직원 만족’을 연결해야 의미가 생긴다. 신과장은 순간 머리속이 하얘지며, 입술을 들썩이다 입을 다물었다.

3. 피드백을 ‘공격’으로 번역하다
퇴근 전, 고팀장은 보고서 초안에 빨간 코멘트를 남겼다. “HR지표의 원인지표와 결과지표의 스토리라인 보완 필요.” 알림음이 울리는 순간, 신과장은 얼굴이 굳었다. 대학 시절 논문 실수를 지적받고 그날 밤 잠을 설친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피드백 = 공격”이라는 방어적 번역을 실행했고, 커서를 움직여 “확인하겠습니다”라 적으면서도 손끝이 얼얼했다.

4. 기회 앞에서 자동 재생된 한 마디
목요일, AI 파일럿 프로젝트 지원 메일이 공지됐다. 팀마다 한 명씩 자원 받아 데이터를 활용한 워크플로 혁신을 실험한다는 내용. 동료들이 열띤 눈빛을 주고받을 때, 신과장은 ‘나는 경험이 부족해’, ‘리스크가 커 보인다’라는 변명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결국 지원서를 쓰지 않았다. 학습민첩성³이 낮으면 하이포 후보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는 HR 리더십 보고서를 언뜻 기억했지만, 손끝은 움직이지 않았다.

5. 네트워크의 공백
금요일 6시, 데이터 자동화 커뮤니티 슬랙에서는 ‘파이프라인 템플릿’이 공유됐다. 신과장은 파일만 저장하고 “오늘은 피곤하니까”라며 퇴근했다. 장기 연구에 따르면 네트워킹이 연봉과 만족도를 모두 상승시키지만, 그는 낯선 대화에 기운을 쓰기 싫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질문한다는 건 또 다른 실수 가능성이니까.

6. 고팀장의 메모: 다섯 줄 진단
고팀장은 신과장에 대한 관찰 결과를 노트패드에 이렇게 적었다.
그리고 굵은 글씨로 결론을 남겼다.
“완벽주의는 안전을 약속하지 않는다. 작은 실패를 감수하지 않는 사람은 큰 성공도 감수하지 못한다.”
신과장은 그 말이 왜 마음을 찌르는지 아직 몰랐다. 다만 창가에 앉아 빈 머그잔을 만지작거리며, 자신이 정말 ‘핵심인재가 될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을 처음으로 자각했다. 아직도 완벽하려 애쓰는 손끝이 살짝 떨렸다. 고팀장은 그 떨림이 변화의 진동이 되길 바라며 창밖 저녁 햇살을 잠시 바라봤다. 지금, ‘현재의 유령’은 조용하지만 선명하게 신과장의 뒤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각주
¹ 심리적 안전감: 팀 내에서 의견·실수를 편안히 공유할 수 있다는 공동 신념. 혁신의 전제 조건.
² 파레토 법칙: 결과의 80%가 원인의 20%에서 나온다는 경험 법칙. 업무 집중 기준.
³ 학습민첩성: 새로운 상황을 빠르게 학습·적응·전이하는 역량. 하이포 식별 핵심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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