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더 로드』를 읽은 지 15년이 지났다. 이상하게도 이 책은 읽고 난 직후보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더 자주 떠오른다. 처음 읽었을 때는 문명이 무너진 세계, 잿빛 하늘, 굶주림, 폭력, 남쪽으로 향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여정이 강하게 남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내게 남은 것은 위험을 극복하는 멋진 아버지가 아닌 한 아버지의 버티는 마음이었다.
『더 로드』는 문명이 파괴된 뒤의 폐허가 된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카트에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싣고 남쪽으로 향한다. 그 길 위에서 그들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인간성이 말살되어 가는 사람들, 생존을 위해 타인을 위협하는 사람들, 더 이상 사람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사람들 사이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먹을 것은 줄어들고, 몸은 쇠약해지고,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아버지는 멈추지 않는다. 그에게 남은 소임이 있기 때문이다. 아들을 살리는 것.
내가 이 소설을 읽던 시기는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기대도 있었지만, 기대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산적한 과제였다. 아직 자리를 잡기도 전에 해결해야 할 일들이 몰려왔다. 내 능력보다 일이 커 보였고, 내 존재감보다 조직의 문제들이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다음 날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먼저 떠올랐다. 퇴근을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회사에 붙잡혀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답답한 마음으로 다음 날의 일과를 생각하다가 잠시 기분전환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책은 희망에 찬 메시지나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아님에도 나의 관심을 끌었다. 소설 속 주인공보다는 내가 훨씬 나은 상황이라는 생각. 적어도 내 주변에는 꽤 괜찮은 사람들이 여전히 있고, 거주할 집이 있었고, 먹을 것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 상황을 너무 크게 느끼고 있었다.
소설 속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는 대다한 포부나 계획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오늘 하루를 넘기고, 내일 아침까지 아들을 살리고,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기 위해 움직인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현실적이었다. 인생의 어떤 시기에는 큰 비전보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것이 더 절실하다. 무너진 마음으로도 밥을 먹고, 두려운 마음으로도 출근하고,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날에도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어떤 날에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용기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아버지의 절박함이 이해되었다. 때로는 무기력했을 것이다. 아무리 애써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몸은 점점 약해지고, 아이를 지키고 싶은 마음과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함께 밀려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 역할을 놓지 않는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말이 너무 거칠게 들릴 수 있지만, 어떤 시기의 삶은 정말 그렇다. 우아하게 버티는 것이 아니라, 간신히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소설의 끝에서 아버지는 더 이상 아들을 데리고 갈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의 생명은 거의 다했고,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을 다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아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닿는다. 처음으로 인간성이 보존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아들을 해치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돌봐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다. 아버지는 그 가능성을 확인한 뒤 눈을 감는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 생각했다. 만약 아버지가 중간에 포기했다면, 아들은 그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끝까지 걸었기 때문에, 자신의 힘이 다하는 지점까지 아들을 데려갔기 때문에, 비로소 다음 손길이 닿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아버지의 노력이 하늘에 닿았다고 믿고 싶었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을 만큼 그 장면은 깊게 남았다.
그때의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내가 여기서 포기하면 내 가족은 어떻게 될까. 내가 감당해야 할 현실은 소설 속 폐허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은 것이었지만, 마음이 무너질 때 사람은 자기 앞의 짐만 보게 된다. 그때 『더 로드』는 이상한 방식으로 나를 위로했다. 괜찮다고 말해준 것이 아니라, 네가 아직 걸을 수 있다면 조금만 더 걸어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15년이 지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 소설은 희망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희망이 전혀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희망은 밝은 말이나 근사한 결말 속에 있지 않았다. 희망은 아버지가 카트를 밀며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데 있었다. 희망은 아들에게 아직 불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데 있었다. 희망은 자신이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책임질 수 있는 지점까지는 가보려는 마음에 있었다.
살다 보면 우리는 종종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큰 과제 앞에 선다. 커리어도 그렇고, 가족도 그렇고, 삶도 그렇다. 그때마다 우리는 자신감이 충분해서 걷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감이 바닥난 상태에서도 걷는다. 왜냐하면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지켜야 할 사람이 있고, 끝내야 할 일이 있고, 아직 넘겨주지 못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더 로드』를 읽은 지 15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책을 한 사람이 자기 소임을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읽는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끝까지 해내었던 일이 바로 보상받지 않더라도, 내가 걸어간 만큼 누군가에게 다음 가능성이 열린다는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세상을 구한 영웅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들을 다음 보호자에게 닿게 했다. 어쩌면 우리 삶의 많은 책임도 그 정도인지 모른다. 완벽하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가능성이 닿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걷고, 내 힘이 닿는 데까지 밀고 가는 것. 그 길 끝에서 어떤 도움의 손길이 올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손길을 만날 수 있는 자리까지는 가보는 것.
15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아버지의 마지막 여정을 생각한다. 그리고 조용히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오늘 내가 밀어야 할 카트를 밀고 있는가. 아직 내 안의 작은 불을 꺼뜨리지 않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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